JVC 역사
Sony Betamax vs. JVC VHS
1953년 마쯔시다에서 독립한 JVC(Victor Company of Japan, Ltd.)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산업의 꽃이 된 TV 산업에서 이렇다 할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JVC의 겐지로 다카야나기는 뉴스와 정보를 즉시 전달하여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TV의 영향에 주목했다. 그러나 다카야나기의 눈에는 이러한 대중매체가 소수의 방송사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었고, 전 국민은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그는 지적으로는 쓸모 없고, 미적으로는 조잡하고, 상업적으로는 과장된 2류의 대중매체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쓰여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카야나기는 TV가 언젠가는 방대한 양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TV 영상물을 만드는 개인적인 매체가 될 것이라고 꿈꿨다. 이미 JVC안에서는 전설적인 지도자로 알려진 다카야나기는 그의 꿈을 많은 젊은 과학자들과 나누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수년 뒤 그의 꿈을 실현시킬 부드러운 말씨의 총명한 젊은 과학자 유마 시라이시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기술은 매우 획기적인 도전이었는데 시라이시의 연구초기의 노트를 보면, '다카야나기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저장하기 위한 실용적인 방법은 자성 물질의 형태를 띤 어떤 것 즉, 테이프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영상을 담기 위해서는 테이프의 넓이가 음성 녹음 테이프보다 훨씬 넓어야 했다. 그리고 테이프에서 수상관(受像管)으로 영상을 전달하는 전자장치는 그 크기가 거대했고 가격 또한 비쌌다. 어떻게 하면 가정에서 직접 자신들의 TV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작고 싸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JVC 보다 10배가 더 큰 마쯔시다나 연구와 혁신활동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소니와 경쟁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훨씬 더 큰 다른 일본 전자회사들과 경쟁해야 함에도, JVC의 최고 경영진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JVC 지도자들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겐지로 다카야나기는 TV 분야에서의 개척정신으로 JVC 밖에서도 유명했었고, 유마 시라이시는 전자공학자이면서 컨셉을 구상하는 능력이 뛰어났었다. 무엇보다 이 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시쯔오 다카노는 공학자이면서 위험을 헤쳐나갈 재능과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다카노와 시라이시가 함께 일하게 된 이 팀이 바로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다카야나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용 비디오라는 목표는 JVC처럼 작고 평범한 기업은 이룰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JVC는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VTMC(Victor Talking Machines Company, U.S.A.)의 전후 일본 업체로 축음기 생산을 통해 어느 정도의 명성을 쌓은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용 비디오는 JVC가 아닌 안정된 기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개발할 것처럼 보였다.
195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소리뿐만 아니라 영상까지 담을 수 있는 VTR이 암펙스(Ampex)의 여섯 명의 공학자들(Charles E.Anderson, Ray Dolby, Alex Maxey, Shelby Henderson, Charles Ginsburg, Fred Pfost)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것은 획기적인 제품으로써 방송 산업에 새로운 기원을 세웠는데 이때부터 유일한 방송 수단이었던 생방송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동부에서 만들어진 TV 프로그램이 테이프로 녹화되어 반대편인 서부에서 황금 시간대에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암펙스의 VTR은 가정용 비디오를 개발하려는 꿈에 한 발 다가선 것이기는 하지만 그 크기가 너무 컸다. 쥬크박스 크기의 거대한 몸집에 2인치 테이프를 릴에서 릴로 감아 썼으며, 소리와 영상을 전달하는 헤드가 네 개나 필요했다. 거기에 엄청난 소음과 가격 또한 비쌌기 때문에 단지 상업 방송국과 같은 큰 조직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
암펙스의 VTR 개발 직후 JVC의 VTR 개발팀은 더 작고 간단한 VTR 개발에 착수했고, 5년 뒤인 1959년에 2인치 테이프와 두 개의 헤드를 사용하는 VTR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미 암펙스의 VTR이 전 세계의 모든 방송국에 설치된 다음이었고, 일본 시장 역시 암펙스의 VTR을 만들어 팔아온 소니에 의해 잠식된 상태였기 때문에 판매에서 패배의 쓴맛을 봐야했다. JVC는 경쟁사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암펙스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기술 표준과는 맞지 않았다. JVC의 VTR 개발팀장인 다카노는 바로 이 '기술적 표준화(Technological Standards)'를 고려하지 않고 시장에 진입한 것을 실패의 요인으로 보았다. 이것은 거의 20년 후에 도쿄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지게 되는 베타방식(소니)과 VHS방식(JVC)의 표준화 전쟁에서 JVC가 이기게 되는 중요한 교훈이 된다. 1960년대를 지나오며 VTR의 크기와 가격은 파격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아직까지 가정용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전업계의 거인 그룹 마쯔시다와 일본의 가장 유명한 기업인 아키오 모리타가 이끄는 소니 그리고 JVC에 의해서 3/4인치 VTR 개발이 시작되었다.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무역박람회에서 만난 세 기업의 대표자들은 시장성 높은 3/4인치 VTR 개발을 위해 손을 잡게 된다. 마쯔시다, 소니, JVC는 1964년 녹음 테이프가 카세트 형태로 선보인 이래 비디오 테이프 역시 카세트 안으로 넣으려 노력해왔고 그에 대한 기술적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이들 세 회사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들 중 가장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니의 U-매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결국 신제품을 개발해냈다. 더 이상 비디오 테이프는 영사기의 헤드에 필름을 끼워 넣어야 하는 분리된 두 개의 릴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시간 분량의 3/4인치 필름을 내장한 카세트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이 U-매틱 기술은 소니에 의해 특허를 얻었고, 홈 VCR은 마쯔시다, 소니 그리고 JVC의 연구자들에게 한층 다가섰다.
1970년에 마쯔시다, 소니 그리고 JVC가 채결한 상호특허사용허가(Cross-Licensing)는 VTR에 관한 서로의 신기술을 특허사용료 없이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했으며, 미래 혁신을 함께 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상호특허사용허가를 통해 세 회사는 3/4인치 VCR에 관한 서로의 특허기술을 공유했으며, 소니에서 처음 선보이고 1970년대 중반 JVC에서 선보이게 되는 엄청난 규모의 수익성을 가진 1/2인치 홈 VCR에 관한 특허기술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신기술에 관련된 이해관계 때문에 세 회사의 공동연구는 깨지게 되었고, 1970년 이후 마쯔시다, 소니 그리고 JVC는 다시 동료에서 경쟁자로 돌아서게 된다.
공동연구에 참여했던 이 세 기업들이 똑같이 이득을 얻진 못했다. 아직까지도 가정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크기나 무게, 간단화, 가격 등과 같은 문제 때문에 3/4인치 VCR을 가정용으로 팔려는 노력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이 제품의 주요 시장이 된 기관이나 학교 같은 곳이 소니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소니는 3/4인치 VCR을 통해 이득을 봤지만, 마쯔시다와 JVC는 손해를 봤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74년 시쯔오 다카노와 유마 시라이시는 소니가 주최하는 모임에 초대받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소니는 가정용으로 적합한 홈 VCR을 선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소니가 최초였다. 1970년 3/4인치 VTR에 대한 상호특허사용허가를 함께 채결했던 마쯔시다와 JVC에게 보여준 이 홈 VCR은 3/4인치 VTR의 후속모델격인 베타맥스라는 이름의 제품으로 1/2인치 테이프와 두 개의 헤드를 사용하며,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볍고 비싸지 않았다.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와 관심으로 베타맥스는 기이한 제품이 아닌 주류제품으로 보이게 되었고 매출도 급증했다. 소니의 마케팅 전략은 베타맥스가 TV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대로 옮길 수 있는 시간조절장치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소비자들은 집에 없는 동안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었다. 녹화시간이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베타맥스의 판매는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로 성공한 가정용 VCR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결국 소니의 베타맥스는 다른 테이프 형태로 마지막으로 뛰어든 JVC와 그 모기업인 마쯔시다를 위해 시장을 열어준 데 불과했다.
JVC는 1970년 3/4인치 VCR에서의 패배 이후 홈 VCR 개발에 대한 사기가 많이 떨어졌고, 1971년 이후부터는 홈 VCR 개발에 대한 대부분의 지원을 끊었다. 단지 시라이시와 다카노가 이끄는 조그만 팀만이 소니와 마쯔시다 그리고 다른 막강한 경쟁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해 1971년부터 1974년까지 4년간의 끈질긴 노력을 했다.
시라이시와 다카노는 자사의 3/4인치 VCR 패배뿐만 아니라 소니나 마쯔시다 역시 소비자가 원하는 VCR을 만들지 못했다는데 적지 않은 실망을 했다. 그들은 홈 VCR 시장에서 실패한 3/4인치 VCR의 실패요인을 되짚어보고, 뭐가 잘못됐을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결국 JVC의 기술진은 이전의 공학적 사고를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시라이시는 "3/4인치 VCR의 개선에 관한 생각은 순전히 공학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이전의 VTR들을 비교해보면 매 단계마다 상당한 수준의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가정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홈 VCR을 충족시킬 어떤 조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홈 VCR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조건이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물음 아래 JVC의 기술진들은 서로 토론하고, 불만을 제시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홈 VCR이 가져야하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JVC의 기술진들은 공학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 서로 질문하기보다는 조립자, 소매상, 수리자, 고객 등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 엔지니어적인 발상이 아닌.... 문제를 풀어 가는 접근 방식이 ... 눈길을 끈다....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풀어 나가는 해결책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 하는 모습이 일반 엔지니어 들과는 차이가 난다.... 이들이 보는 것은 가능성 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 ...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은 없어 지는거니까..
== 성우용 )
1971년 시라이시와 그의 팀은 '매트릭스'라 불리는 12가지의 목표를 세웠다. 이후 그들은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과 맞닥뜨렸을 때마다 그 해답을 매트릭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JVC의 연구개발 조직은 경영진들의 불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의 12가지 요구조건을 충족할 때까지 첫 VHS VCR을 선보이지 않았다.
VCR로서의 요구조건
· 일반 TV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 일반 TV 수신기와 같은 품질의 소리와 영상을 재생해야 한다.
· 녹화 시간이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 타사의 제품과 테이프를 교환할 수 있게 호환성이 있어야 한다.
· 기능성이 뛰어나야 한다. (예약녹화 프로그램, 비디오 카메라 등)
가정용으로서의 요구조건
· 너무 비싸서는 안 된다.
· 작동하기 쉬워야 한다.
· 운영비가 낮아야 한다.
제조상의 요구조건
· 제조방법이 너무 어려우면 안 된다.
· 많은 다른 모델들이 같은 부품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 수리가 쉬워야 한다.
사회에의 요구조건
· VCR은 정보와 문화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
( 어떤 한 제품을 개발 하기 위한 Concept을 잡아 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성 우용..^^ )
시라이시는 고객과 제작자 그리고 수리자를 만족시키는 3차원적인 VCR 컨셉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미 그는 과거의 경험들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어려운 결심을 했었다. 그는 JVC가 비디오 테이프의 넓이뿐만 아니라 길이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동적인 TV의 더 나은 개선이 아닌 능동적인 매체로서의 VCR 개발이라는 점이다.
시라이시는 창조적인 컨셉을 생각해내고 다카노는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며 일이 시작됐다. 1977년 JVC의 VHS VCR이 생산될 즈음, 다카노는 배짱하나로 유럽 시장의 문을 열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서유럽 국가들의 대표적 전자회사들을 직접 찾아가 VHS 원형을 소개했다. 처음 방문했던 두 기업(네덜란드의 Philips와 독일의 Grundig)은 회의적이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의 Thomson, 독일의 Telefunken, 영국의 Thorn에 VHS 제조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다카노의 결단력과 시라이시의 신중함은 일본 TV 제조업체들에게 그들 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다카노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많은 기업의 수뇌부들은 더 이상 비디오 개발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러 기업에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변화를 줄 비디오라는 꿈을 함께 할 동료들이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았고 서로의 연구실적에 대해 토론했다. 각 기업 수뇌부의 간섭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4년 동안 이런 다른 기업의 연구자들과의 연계속에서 다카노는 그의 최고 경영진보다 몇 단계 앞서 있었다. 많은 기업의 공학자들은 1/2인치 홈 VCR이 가지고 있는 상당한 잠재력을 믿었고, 이것에 모든 노력을 퍼부었다. 1/2인치 홈 VCR에 대한 희망은 다카노와 시라이시 그리고 그들의 팀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왜냐하면 3/4인치 VCR의 실패 이후 회산에서 1/2인치 홈 VCR 프로젝트에 대한 압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JVC는 수백 억에 달할 홈 비디오 산업에 대한 관심을 줄였다. 급기야 1971년 90명이었던 VCR 개발팀의 인원을 10명으로 줄였고, 남아있는 인원도 그들 시간의 일부만을 1/2인치 VCR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JVC는 비디오생산부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조직상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보였지만, 1971년과 1972년에 걸쳐 실패했던 3/4인치 VTR이 이 새로운 부서의 유일한 작품이었다. JVC의 중앙 연구소에서 비디오생산부서로 분리한 주된 이유는 예산의 독립이었다. 독립된 부서는 예산을 자체 지원해야 했고 비디오생산부서는 3/4인치 VTR의 실패로 그럴 능력이 되지 않았다.
JVC의 경영진은 연구개발 부서보다는 3/4인치 VTR 마케팅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부서를 더 필요로 했다. 그래서 비디오생산부서는 VCR 개발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다. 비디오생산부서의 마케팅 관련 직원들은 적자를 흑자로 바꾸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고, 그래서 시라이시와 그의 팀이 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회사의 정책을 무시하고 연구활동을 강행한 시라이시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가 JVC의 중앙연구소에서 VTR에 대한 연구개발 활동을 할 때는 최고 경영진의 많은 관심과 조언이 있기는 했지만 어떤 기간에 맞춰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하지만 우리가 비밀리에 연구활동을 한 다음부터는 그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몰랐기에 불평도,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었다. 활동 자금을 찾는데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최상의 환경이었다."
전 일본을 휘청하게 만든 중동 오일쇼크는 계속되는 적자로 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된 다카노와 시라이시 그리고 그의 팀에게는 오히려 호기를 만들어줬다. 오일쇼크는 두 자리수 인플레이라는 전례 없는 현상을 가져왔고 모든 물가는 치솟았다. 소니와 마쯔시다의 3/4인치 VTR을 포함한 모든 전자제품의 가격 또한 인플레이의 영향으로 껑충 뛰었다. JVC 비디오생산부서의 마케팅 관련 직원들은 창고에 가득 쌓여있는, 오일쇼크 전에 만들어진 JVC의 3/4인치 VTR들을 예전 가격으로 팔기 시작했고, 오일쇼크 기간 동안 모든 제고품을 다 팔았다.
이 행운 덕에 VCR 프로젝트가 계속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 어느 날 JVC의 모기업 회장인 고노스케 마쯔시다가 요코하마에 있는 비디오생산부서의 연구개발 부를 방문했고, 다카노와 시라이시는 요코하마 공장의 귀빈실에서 마쯔시다에게 그들의 1/2인치 VCR 원형을 보여주었다. 가로 45cm, 세로 35cm, 높이 15cm의 작은 제품이었다. 다카노는 준비한 테이프를 보여줬고, 기술적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마쯔시다는 웃으며 상체를 구부려 가슴을 VCR에 대고, "매우 놀랍군요. 정말 근사한 물건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다카노와 시라이시는 VCR 프로젝트에 대한 윤곽을 유지해 나갔으며, 경영진이 연구활동 예산을 삭감하고 그들의 연구원에게 판매나 수리 또는 고객문제해결 등과 같은 분야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말해도 불평하지 않았다. 어떠한 냉대도 그들을 단념시키지 못했다.
일본회사에서는 중요한 실수에 관련된 직원이라도 해고하진 않지만 외부로 전근을 시키거나 장래성 없는 직책으로 자리를 옮기게 한다. 다카노는 대부분 그보다 어린 팀원들을 생각하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JVC보다 훨씬 큰 대기업들이 비디오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다카노를 비롯한 모든 팀원들이 두려움을 느꼈다. 다른 거대한 경쟁자들에 맞서 자신들 고유의 시스템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일종의 무모한 모험이었다. 어느 날, 다카노는 부서의 모든 관리자들을 방으로 불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와 함께 죽을 각오로 일할 자신이 있는지 물어봤다. "우리는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원한다면 나는 할겁니다. 누구든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말하세요. 그 사람은 이 프로젝트에서 참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결국 팀원 중 한 명만이 떠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카노와 함께 남았다. "이 때 나는 정말 기뻤다. 이 순간이 없었다면 VHS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다카노는 말했다.
1974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소니는 다카노와 시라이시를 초대해서 다음해면 국내시장에 출시될 준비가 끝난 그들의 신제품 베타맥스를 보여줬다. VHS(Video Home System)라고 명명된 JVC 원형의 시장진입까지는 적어도 18개월이 남은 시기였다. JVC 기술이 소니의 제품을 이길 수 있는 어떤 경쟁적 우위를 찾지 못한다면, 후발 기술인 VHS의 진입은 실패할게 뻔했다.
첫 번째 선택은 소니의 승리를 인정하고 자사의 모든 기술을 넘겨준 후, 홈 VCR 시장에서 소니의 뒤에 서야하는 것이고, 두 번째 선택은 개발을 서둘러 소니와 동시에, 그게 안된다면 적어도 몇 개월 뒤에라도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비디오 카메라의 개발을 늦추고 다카노와 시라이시가 동시에 VCR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선택은 모든걸 관두고 소니의 성공을 축하하여 JVC의 경영진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투지 넘치는 다카노와 그의 친구 시라이시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니는 도쿄 본사에서 자사의 VCR을 JVC 대표자에게 공개했다. 두 개의 헤드와 매우 작은 1/2인치 테이프 카세트를 사용하는 소니의 VCR은 JVC가 자체 개발한 VCR의 원형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테이프의 길이가 1시간이었다. 순간 시라이시와 다카노의 눈이 마주쳤다. 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고,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소니는 시장의 문을 열긴 했지만, 그 문을 닫을 방법이 없었다.
소니는 자사의 세계 최초 홈 VCR의 제작과 마케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소니로서는 표준화를 제안한 것이었지만, 다카노와 시라이시의 눈에는 이미 정해 놓은 표준을 던져주고 같이 하거나 아니면 떠나라는 것처럼 보였다. JVC의 기술진들은 소니의 대표자에게 1970년에 있었던 공동연구와 같은 계획이 있냐고 물어봤고, 소니는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JVC와 마쯔시다 역시 '그렇게 할' 어떤 계획도 없었다.
시라이시와 다카노는 "고맙다", "훌륭한 설명회였고, 소니의 멋진 제품에 행운이 있길 바란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소니의 신제품 베타맥스에 대한 자신감은 나타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은 JVC가 VHS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수많은 장벽이 남아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소니를 기술적으로 압도하고 홈 VCR 시장을 소니의 지배 아래 두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JVC의 관점에서 보면, 소니의 베타맥스 VCR은 작아야 할 부분에서는 크고, 커야 할 부분에서는 작았다. 베타맥스 VCR은 JVC의 비디오생산부서에 의해 개발중인 VHS 원형보다 컸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소니의 카세트 안에는 JVC의 반 밖에 안 되는 1시간 길이의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니의 베타방식을 본 후, 다카노는 "우리가 본 것에 의하면, 소니가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소니의 제품이 과연 홈 VCR 시장에서 성공할지 의문이다. 우리는 개발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소니의 제품은 우리의 '매트릭스'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두 시간의 녹화와 재생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카노는 베타맥스가 기본적인 고객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TV에서 방영되는 좋아하는 영화를 녹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니는 1974년 12월에 있었던 베타맥스 설명회 이후, 베타맥스를 함께 생산, 유통할 기업을 찾고 있었다. 소니는 베타맥스 VCR의 생산을 위해 이미 준비가 끝난 생산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JVC와 마쯔시다를 초대했다. 하지만 소니의 초대를 받은 시라이시와 다카노의 상관 히로부미 도쿠미쯔는 그 초대를 거절했다. JVC는 VCR 개발을 독자적으로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소니의 기술을 계속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마쯔시다 대표자는 초대에 응했고 1975년 1월에 소니의 공장을 방문해서 배타멕스 제조를 위해 준비해 둔 설비들을 둘러보았다. 소니로서는 대기업인 마쯔시다를 끌어들여 대중에게 흥미와 확신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마쯔시다는 한 시간짜리 테이프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소니가 정해 놓은 표준에 당혹스러워 했다. 결국 마쯔시다는 소니의 '표준화' 참여를 보류했고 JVC에게는 자신들의 기술을 마무리 할 시간이 생겼다.
1976년 9월 모습을 드러낸 JVC의 VHS방식 VCR은 시장진입을 서두르지 않았고 시라이시와 그의 팀이 원하는 모든 것에 맞게 설계했기 때문에 완벽했다.
JVC의 스타일과 가전제품 시장의 스타일을 맞추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크기, 지명도, 비디오 경험의 관점에서, JVC는 VCR 시장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이었다. JVC는 새로운 기술로 시장을 창조한 경험도 없었고, 신제품 도입시 중요한 유통망의 크기 또한 마쯔시다의 1/10 크기로 일본기업들의 가장 작은 유통망 중 하나였다.
도쿄의 JVC 본사나 요코하마의 공장에서의 사소한 충돌에도 그들에겐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직원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가족끼리 서로 잘 이해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너그럽게 대했다. 하지만 상업화 전략에 있어서는 다카노의 독특한 서유럽 시장 개척에도 불구하고 소심해 보였다. JVC는 제품을 판매하는 기술보다는 화목한 회사로 더 유명했다.
다카노는 이러한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과 일본의 많은 회사들은 경제적인 가격의 홈 VCR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산업 전반에는 자신감이 결핍되어 있었다. 다카노는 만약 그가 실용적인 모델로서 VHS 원형을 선두 제조업체들에게 선보인다면, 그리고 친구로서 겸손한 설명회를 만든다면, 그들의 자존심을 세우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제조업체들은 여러 VCR 원형으로 아직은 불확실한 시장에 대규모의 비용을 투자하기보다는 JVC의 VHS 방식을 채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1974년부터 시작된 소니의 표준화를 위한 노력은 후발업체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기 위해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소니는 자사의 기술 정보를 나눠주며 다른 기업들이 베타 방식을 채택하기 바랬다. 하지만 이러한 소니의 전략도 베타방식을 확고한 표준으로 만들지 못했다. 1976년 후반기까지도 다른 VCR 원형이 들어갈 여유가 있었고, JVC의 VHS 방식은 준비가 끝났다. 다카노의 시장 진입은 소니와는 매우 달랐다. 그는 겸손하려 노력했다. 겸손은 마케팅 기법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카노에게는 겸손을 날카로운 무기처럼 사용하는 기술이 있었다.
다카노와 JVC에게는 시장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 실용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했다. 다카노는 "우리의 기본 정책은 기술과 VHS 방식뿐만 아니라 정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만큼 시장은 충분히 넓다. 일본이 비디오 시장과 생산을 독점할 필요도 없고, 한 회사가 모든 이익을 독점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했다.
1976년 초반 JVC가 VHS의 원형을 완성했을 때, 다카노는 적어도 4개의 대기업이 자신들의 독자적인 연구와 개발 노력을 포기하고 JVC에 합류할 것임을 확신했다.
JVC는 이러한 대기업들과의 협력 없이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산과 유통 능력은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JVC는 1년에 10,000개에서 20,000개의 VCR 생산 능력을 가진 한 개의 공장만을 가지고 있었다. 첫 해의 VCR 수요가 25,000였음을 감안한다면 성공 때문에 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소니는 일본의 도시바와 산요, 그리고 미국의 제니스와 손잡고 1975년부터 양국에 베타맥스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 시장은 거의 침투하지 못했다. 베타맥스 판매량은 VHS가 도입되기까지의 18개월 동안 전세계 시장에서 200,000개를 넘지 못했다.
소니와 협력 관계에 있지 않은 많은 기업들과 손잡기 위한 JVC의 노력은 연구시설에서의 일련의 설명회와 1976년 9월 9일 도쿄의 오쿠라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으로 이어졌다.
JVC 비디오디스크부서의 고위 관리자인 타다히로 사카오는 'JVC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JVC 사장 고기치 마쯔노를 생각했다. 그는 적극적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사고 방식을 회사에 심어놓았다.
자신의 경영팀 앞에서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당신들이 공손하고 친절해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미국 대기업의 새로운 최고경영진을 상상해보라. 사업의 가치로서 친절에 대한 믿음은 사실상 서양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주춤한 상태였다. 하지만 마쯔노의 첫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마쯔노는 친구간이나 부부간에 흔히 볼 수 있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런 일본의 윤리를 믿었다. 마쯔노는 JVC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사업 파트너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카노와 시라이시는 마쯔시다나 히타치 같은 대기업의 자존심이 작은 JVC의 획기적인 기술 신상품을 인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승리자로서가 아닌 협력을 부탁하는 입장으로 그들 앞에 섰다.
시라이시는 당시의 VHS 설명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가 설명회를 가질 때마다 다카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는 각 가정이 VCR을 한 대씩 가지게 될 날을 꿈꿔왔다. 이제 우리는 VCR이 우리의 생활을 좀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VCR의 보급이 우리의 당면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다른 제조업체들에게 VHS VCR을 보여주며, 'JVC는 지금까지 이 VHS VCR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방에 있는 여러분들도 모두 다른 종류의 VCR 원형을 개발중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함께 일하는데 어떤 회사 또는 어떤 VCR 원형이냐는 중요치 않다. 가장 좋은 시스템으로 뭉쳐야한다.'" 다카노는 제조업체들에게 설명회마다 매번 표준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다른 회사의 제품이 JVC 제품보다 더 좋다면 그 회사의 제품을 표준화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다카노는 어느 제품도 JVC의 VHS VCR을 능가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시라이시 매트릭스처럼 VCR의 문제에 충실히 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카노는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독점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 기술이 좋다면, 다른 기업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두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의 호환성을 위해서 우리 제품이 요구하는 어떤 표준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기업을 선택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다카노는 마쯔노가 강조했던 것처럼 공손하고 친절했고, 또한 영악했다. JVC의 겸손이라는 정책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여 함께 VHS VCR을 제조하고 유통하게 만들었고, 결국 JVC의 VHS VCR을 홈 VCR의 표준으로 만들고 일본의 홈 VCR 시장을 열었다. 1977년까지 JVC는 VCR 생산 능력을 늘렸고, 마쯔시다, 히타치, 미쯔비시 같은 협력 기업들도 JVC의 라이센스 계약 아래 그들의 생산시설을 갖추기 위해 서둘렀다.
1976년 JVC가 다른 일본의 제조업체들에게 VHS 모델을 공개할 무렵, 아주 큰 장벽 하나가 생겼다. 일본의 제품 표준화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일본국제무역산업부(MITI : The Japanese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가 하나의 국가표준을 위해 JVC의 VHS 방식을 포기할 수 없겠냐고 제안해 왔다. 소니의 베타방식은 이미 시장에 진입한 상태였고 화질면에서도 JVC의 VHS 방식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JVC는 VHS가 상당한 수준의 화질과 더 편리한 테이프 길이를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JVC와 소니는 지금까지도 어느 방식이 더 화질이 좋으냐에 대해 논쟁을 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방식간의 화질차이는 소비자가 거의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작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VCR을 선택할 때, 이것은 무의미한 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술적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적 문제였다. JVC에게는 후발주자로서 VHS를 성공시킬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힘이 있어야 했다. 만약 대기업들과의 제휴가 없었다면 MITI는 JVC에게 재정적 손실에 대한 어떤 보상을 제공하면서라도 VHS를 포기시키려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일본 가전업계 제조업체들과의 제휴는 이미 MITI의 피할 수 없는 압력을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논쟁은 끝나고 MITI는 표준화 문제에서 손을 뗐다.
다카야나기가 처음으로 홈 VCR을 꿈꾼지 15년 이상이 지난 1976년 9월 9일, 다카노와 시라이시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제조업체들과 기자들 앞에 섰다. 바로 도쿄의 아쿠라 호텔에서 있었던 JVC의 VHS VCR 발표회에서 그들은 비디오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고객 자신의 TV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어느 가정에서나 구입할 수 있도록 작고, 가볍고, 비싸지 않은 가격의 제품을 선보인 것이다. 다카야나기의 꿈을 쫓아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바다로 나갔던 JVC가 드디어 그 반대편에 닿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JVC의 시장진입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평범하고 신중하며 보수적인 고객에게 $1,000이상씩 하는 제품을 파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았다. 또한 그런 고객들은 VCR이 무엇인지, 뭘 하는 기계인지 잘 몰랐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판매원들처럼 JVC의 판매원들도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지는데 익숙해져갔다. 특히 대기업들이 JVC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랜 기간동안 가격을 내리면서 JVC의 소매상들은 혼란상태에 빠졌다. 시장에 출시된 지 6개월만인 1977년 초반 JVC의 VHS VCR 판매량은 바닥을 기었다. JVC의 판매원들은 한결같이 소니와 경쟁하려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외쳤다.
다카노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VCR의 가격을 높였다.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궁리 끝에 그들은 마케팅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한 교육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고객들에게 어떻게 VCR의 가치를 알려줄 수 있을까?
해답은 유마 시라이시의 매트릭스에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프로제트 초기부터 존재했던 암묵적인 요구였다. 1976년 VHS 출시 후 열흘 뒤에 JVC는 VHS 영화를 만들기 위한 완벽한 비디오 카메라를 조용히 발표했다.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다카노나 시라이시에게는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 연구 초기부터 VCR은 사용자가 자신의 생각과 추억을 자기 스타일대로 녹화할 수 있는 개인 매체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카노의 말처럼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그런 제품이었다. 이런 개념에서 이제까지 발명된 TV와는 달랐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었다. 바로 이 VCR을 진정한 개인 매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비디오 카메라였다. JVC의 판매원들은 고객의 여론을 조사하고 자신들의 신제품을 선보이러 밖으로 나갈 때 비디오 카메라를 갖고 나갔다. 주로 가족들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고 그것을 녹화해서 보여줬다. 가와사키의 한 판매원은 자신의 주요 고객들의 사진들과 좋아하는 팝송을 비디오에 담아 선물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장 접근은 지난 추억을 현재의 생활로 끌어들인다는 매력 때문에 큰 호응을 얻었고, '비디오 앨범'이라는 판매 촉진책이 시작되었다.
1977년 8월, RCA는 VHS VCR을 미국시장에 처음으로 수입했다. 미국내 TV시장의 위축 때문에 RCA는 매우 조심스럽게 VHS VCR 도입을 추진했다. RCA는 처음에 베타맥스의 제조를 거절했었고, 미국 내에서 VCR의 제조를 피해왔다. VHS VCR의 도입도 단지 일본 OEM 공급업체인 마쯔시다가 만든 제품을 파는 것에만 동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RCA의 마케팅 이사 Jack Sauter는 일본의 TV/비디오 시장이 서서히 활성화되고 있는 반면 미국의 시장은 1969년부터 1975년간 거의 완전히 멈춰 섰다는 점을 주목했다. "모든 산업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컬러 TV의 성숙기였던 1969년이 이 산업의 종점이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TV의 평균 수명이 7-8년인 것을 상기해야 한다."라고 Sauter는 말했다.
RCA가 어떤 VCR 방식을 채택하느냐에 조심스런 또 하나의 이유는 소니가 베타맥스를 미국에 도입했을 때도 미국 TV 산업은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Sauter는 "우리는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했던 소니의 베타맥스를 지켜봤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은 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업가 Sauter가 베타 방식을 외면한데는 좀 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RCA의 자존심이 소니의 들러리로 취급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1977년 초, RCA는 미국 시장의 VHS VCR 라이센스를 얻기 위해 일본으로 왔다. RCA가 처음 찾아간 곳은 JVC였지만 JVC는 RCA가 만족할 만한 생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JVC의 모기업이자 VHS 협력 회사인 마쯔시다가 RCA의 초기 VCR 주문량인 40,000대(60,000대로 증가한)를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큼 컸다. 하지만 소니와 소니의 미국 협력업체인 제니스 사이의 라이센스 문제로 미국에서의 베타맥스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 Sauter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RCA는 판매와 관련된 라이센스만을 채결하고 만일의 사태에 최소한의 손실을 위해 제조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RCA는 크리스마스와 1998년 1월을 거치며 눈부신 초기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2월부터의 판매는 문자그대로 멈춰 버렸다. 마쯔시다로부터 들여온 60,000대의 VCR 판매책임을 가지고 있는 Sauter는 일본에서 JVC를 회복시킨 마케팅 프로그램을 자신의 스타일로 따라갔다. 첫 단계는 소매상을 찾아가 소비자가 VCR의 구입을 멈춘 원인을 밝히는 일이었다. Sauter는 두 가지 원인을 찾아냈는데, 첫 번째가 VCR의 이미지가 대도시적이라는 것이다. 가족중심이나 소도시의 이미지가 아닌 신기술을 좋아하고 자신들의 스케줄에 맞춰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시켰다 보기를 원하는 젊고 부유한 전문직종 사람들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가 찾아낸 두 번째 원인은 시장에 대한 교육의 부재였다. RCA는 VCR 시장을 대도시의 실험정신 강한 사람들로부터 평범한 가정으로 옮겨야 했다. VCR에 대한 고객의 교육과 흥미유발을 위해서 SPRINT`78이라는 판매촉진 계획이 만들어졌다. 고객들의 사진들로 영화를 만들어 VCR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고객 독특한 매체로서의 VCR의 가치를 일깨웠다. JVC의 일본 시장이 고객 교육으로 성장한 것처럼 RCA의 미국 시장도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회복은 고객 못지 않게 판매원들까지 놀랄 만했다.
JVC와 일본의 그 제휴업체들에게는 VHS의 미국 진출에 대해 RCA의 공헌도가 매우 컸다. 거대하고 풍족한 미국 시장에서 VCR은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되었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작, 소매점과 대여점 등을 확산시켰고, 수 백억 달러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JVC는 강력한 제휴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단기간에 소니의 베타맥스를 따라잡았고, 1980년대 초에는 VHS 방식이 베타 방식을 능가했다. 1985년까지 VHS 방식은 전 세계 VCR 판매의 80% 이상을 차지했으며, 베타 방식의 VCR을 소유한 사람들은 불리한 소수로 전락했다. VCR(주로 VHS 방식)은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특히 미국와 영국에서는 VCR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VCR 대여나 테이프 대여 산업이 열병처럼 퍼져나갔다. 제인 폰다의 유명한 체조 테이프는 비싸고 불편한 8mm나 16mm 필름을 대체해서 학교와 기업을 휩쓸 수 있는 VCR의 교육적 잠재력을 분명히 보여줬다.
VCR은 보잘 것 없고 불확실한 출발에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1억대 이상이 팔렸다. 많은 전문가들은 VCR이 VT나 냉장고처럼 서양사회에서 필수품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 같은 전 세계로의 빠른 확산은 모든 가능한 문제의 해답인 표준화가 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라와 문화와 산업을 초월하는 믿기 힘든 조화가 있었다. 일반적인 사업의 각본대로라면 경쟁자들간의 제살 깎아먹기, 소비자의 혼란, 시장의 분할 등을 초래하는 표준화 전쟁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VCR의 표준화 전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 버렸다. 이러한 예외적인 평화는 1971년 다카노와 시라이시가 홈 VCR의 문제는 기술적 개선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개념의 문제임을 깨달았을 때 태어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과 그의 팀이 이뤄놓은 모든 것을 버렸고, 심지어 암펙스의 기적과 그들의 스승 겐지로 다카야나기의 천재성 마저 무시했다. 다카노와 시라이시는 동료 공학자들과 함께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갔고, 개발된 컨셉은 12개의 목표 즉, 메트릭스에 담겨졌다.
JVC는 그들의 사업 파트너와 고객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스승인 겐지로 다카야나기의 꿈을 실현시켰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영상과 소리를 손쉽게 다시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자료: http://www.jvc.co.jp/english/global-e.html, http://myhome.shinbiro.com/~sapacho/c2.htm |
